SIM JEAM HWAN

제9회 심점환 개인전 기억과 사유-세계 안에서 길 잃기

김소라(미술평론)


‘기억과 사유’, 이 사변적인 제목의 전시(2019. 10. 4~19. 미광화랑)에서 가장 먼저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의외로 ‘기법’ 혹은 ‘형식’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기법이나 형식이 특이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던하거나 세련됨, 혹은 현대적 실험 같은 것에 대한 추구는 화면 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화면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오히려 기법적으로 대단히 ‘자제’하려는 의지다. 대상을 더욱더 핍진하게 파고들면서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그런 욕망이 화면에서 불쑥불쑥 드러나는 지점들이 있다. 작가는 그것을 스스로 문득 깨달을 때마다 묘사를 위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몸을 뒤로 물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 물러섬은 무엇을 향한 것일까? 이런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그것은 이 작품들이 대부분 저녁이라는 시간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관련 있지 않을까? 아직 밝은 하늘에 뜬 달, 노을, 불 켜진 창문, 어두운 숲, 야행성인 부엉이, 퇴근길로 여겨지는 돼지 얼굴의 인물들, 불타는 노을 색을 닮은 해체된 생선들, 저녁은 낮과 밤사이의 시간이다. 다 가시지 않은 밝음과 완전히 오지 않은 어둠 사이의 공간, 그 속에서 사물들의 형체는 여전히 잔존하지만, 낮보다는 덜 생생하다. 대낮의 분노나 환희도 이 시간쯤이면 한층 누그러들어 원래의 색이 옅어진다. 조금은 담담해진 마음으로 낮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다. 새벽이 새날을 기대하는 시간이라면 저녁은 되돌아봄의 시간이다. 성찰과 사색의 시간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사유와 철학을 상징하게 된 것도 바로 그 저녁, 황혼의 시간이 되어야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때문이 아닌가. 작가는 바로 그 시간이 상징하는 사유와 사색, 되돌아봄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긴다. 되돌아보는 사색 속에서 낮의 사물들이 추동하던 생생한 감각도 물러서게 된다. 저녁이라는 사유의 시간과 자제를 통해 한 발 물러선 묘사가 여기서 조응하는 것이다.


이처럼 저녁은 사색을 부르지만 심점환의 사색은 고요한 성찰로 귀결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불안을 부른다. 저녁은 빛과 어둠을 이어주는 시간으로, 빛도 어둠도 아닌 경계의 시간이기 때문이리라. 불분명하고 모호한 상태인 저녁은 불안의 시간이기도 하다. 사물들이 황혼의 빛에 물들 듯 심점환의 저녁도 불안으로 물들며 진동한다. 갈기갈기 해체된 시뻘건 물고기의 잔해, 춥고 으스스한 시인의 방, 산 위에 환영처럼 앉아있는 거대한 고양이, 돼지 가면을 덮어쓴 인물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관람자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부엉이들……, 특히 이른바 고원법 시점의 하늘, 아래에서 위로 한껏 추켜올려다보는 하늘 풍경이 심상치 않다. 알 수 없는 위기감과 불안으로 가득하고 곧 닥칠 재앙을 예고하는 하늘이다.


이러한 그림들에서 드러나는 심점환의 사유와 사색은 명징한 이성으로 수렴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잠재운다. 황혼에 젖은 이성이 잠들면 상상과 환상이 깨어나고, 불안이 날개를 편다. 불안은 야망의 하녀라고 했던가. 특히 현대의 불안은 많은 것을 가지고도 잃을 것을 두려워하는 끝없는 욕심과 야망의 결과물이다. 심점환의 화면에 들끓는 불안은 그러한 현대인들의 심리와 현실을 비판적으로 암시한다.


그러한 암시는 다양한 재조합을 통해 발산된다. 「시의 조건-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황혼의 사유」 시리즈, 「Two Godot」 같은 그림들은 시, 신화, 희곡들의 모티프와 작가의 환상이 재조합되었다. 돼지 인간들의 행렬을 그린 「행진」 시리즈는 브뤼겔(Pieter Brueghel de Oude)의 「맹인의 우화」를 떠올리게 한다. 물고기의 핏빛 사체들을 그린 「장면-바다에 누워」나 돼지 가면을 뒤집어쓴 인간을 그린 「기억의 피안」 시리즈는 인간의 우둔함이나 위선을 풍자한 중세의 히에로니무스 보쉬(Hieronymus Bosch)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이렇듯 이종교배, 파편화, 장소와 시간의 재조합을 통해 화면의 구성 요소들을 복잡하게 연관시키면서 관람자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는 거기서 백석과 고도와 미네르바와 중세 그림들의 잔상을 발견하면서 뭔가 실마리를 찾지만, 작가는 그런 식으로 파악되는 모티프, 단순한 비판성에만 집중하지 말기를 바란다. 화면 속 장면이 드러내는 상황에 이끌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나에게 그것은 결국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강렬한 ‘불안’이다. 그 불안의 원인이 무엇인지 섣불리 분석하고 파악하기 이전에 그 불안과 온전히 마주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 세상살이에 대한 세간의 정답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물질문명, 과학, 논리, 합리성……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부와 권력…… 이런 것들이 정답이 아니겠는가. 사회의 취향이나 가치기준은 획일화된 일변도이며 표준적인 사회적 위계도 분명하고 엄격하다. 그러한 기준에 다가가는 길은 명확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단순하다. 거기에 이르기가 어려울 뿐, 들어서기만 하면 길을 잃기가 어렵다. 이 길에서 불안은 하녀처럼 야망을 끊임없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심점환의 화면은 단지 그 야망의 부질없음만을 폭로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화면은 나에게 이런 주문을 건다. 길을 잃으라…… 불안에 온전히 떨면서 세계 속에서 길을 잃으라…… 그것만이 새로운 길, 혹은 다른 차원의 길과 만나는 길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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